1st SOLO EXHIBITION in 1992

  • 1st solo exhibition_Face of brochure
  • #1992_04_LIVING TIME_181x227cm_mixed media
  • #1992_05_LIVING TIME_130x162cm_mixed media

전시제목: LIVING TIME

전시장소: 단성갤러리

허청의「벽」, 그 유쾌한 음모와 교감

윤우학 | 미술평론가 (평론글 중 발췌)

작가 허청은 벽을 소재로 하여 그의 시각적인 흥미와 재미를 흘려보는데 발상적 동기를 두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이 벽은 거창한 의미를 둔채 무슨 철학적이고 이념적 표현의 한 상징으로서 자리잡기 보다는 그 자신이 삶을 누리고 호흡하며 살아가는 현실의 한 단편으로서 제시될 따름이다. 물론 여기에는 나름의 기준과 해석이 그 소재의 선택에서부터 방법론에 이르기까지 작동되고 있는데 그것은 환경에 반응하는 한 도시인의 조그마한 정서를 캔버스라는 매체를 통해 담는데 있다. 마치 유트릴로가 파리의 담벽을 애정과 교감을 통해 희게 칠해가듯 그는 현대 도시의 담벽을 나름의 교감적 언어로 접근해 나가는 것이다.

너저분하고 지저분한 광고물들이 본래의 선명한 색채와 형태를 잃은 채 부질없는 이미지로 남겨져 있는 폐허로서의 벽을 자신이 모아왔던 인쇄물들(수화물 딱지와 같은 정겨움과 어떤 기억의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존재들)과 함께 일종의 꼴라쥬 기법으로 집합시켜 하나의 회화적 장면으로 치환시켜 놓는 것이 바로 그 방법론이다. 그것들은 하나의 평면(平面)에서 배경이나 주제의 역할과는 무관하게 서로 동시적이고 등가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그 이미지의 교환은 기능을 잃은 시각적 정보들의 또다른 오브제적 각성일 따름이다.

아마도 그는 회화(繪畵)를 어떤 공식과 양식의 결론으로서 대하기보다는 그 자신이 바라보는 근시안적 삶(?)의 한 표현으로서 존재시키길 원하는 것이라 볼 수 있고 그것은 그런만큼 현대 도시인들의 시각적 관념의 한 표상으로서 자리잡은 채 우리에게 발빠른 사색과 회상의 순간을 던져주며 때로는 익살스러운 꿈과 낭만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낡은 정보의 덧없는 교감이 그의 평면에서 이루어질 때 그의 회화(繪畵)는 짧은 생명을 누리며 현대인 특유의 시각적 메커니즘을 교환한 채 기억 밖으로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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