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st Solo Exhibition

vol01_face

 

 

허청의 그 유쾌한 음모와 교감

 

윤우학 | 미술평론가

 

현대 도시인들의 공간의식은 과거의 사람들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거대화 되고 맘모스화되며 보다 구조적인 인공물들로 둘러싸인 그들의 시선은 이미 자연물들의 원거리감으로부터 차단된 채 그 정서마저도 지극히 인공적인 무엇으로 변해있을 따름이다.

이중에서도 특히 도시인들의 수평적 시야는 지극히 근시적인 눈길로 바뀌지 않을 수 없으며 그 직접적 동기는 길을 중심으로 빽빽하게 들어선 벽이다.

 

 

#1991_01_LIVING TIME_80x100cm_mixed midia_1991

LIVING TIME_80x100cm_mixed midia_1991

 

 

실상 현대 도시인들에게 있어서의 벽은 시각적인 동료인 동시에 그 심리적인 모성(母性)의 품이기도 하다. 광활하게 틔어 있는 바다라든지 오밀조밀하게 뚫려있는 산의 자연적 구성과는 달리 직각적이고 평면적인 인공적 구조물로서의 벽이야말로 그네들에게 시각적인 안정감과 동시에 포근한 보호막으로서의 자궁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1992_01_LIVING TIME_181x227cm_mixed media_1992

LIVING TIME_181x227cm_mixed media_1992

 

#1992_02_LIVING TIME_130x162cm_mixed media_1992

LIVING TIME_130x162cm_mixed media_1992

 

 

작가 허청은 벽을 소재로 하여 그의 시각적인 흥미와 재미를 흘려보는데 발상적 동기를 두고 있다. 그에게 있어서 이 벽은 거창한 의미를 둔채 무슨 철학적이고 이념적 표현의 한 상징으로서 자리잡기 보다는 그 자신이 삶을 누리고 호흡하며 살아가는 현실의 한 단편으로서 제시될 따름이다.

물론 여기에는 나름의 기준과 해석이 그 소재의 선택에서부터 방법론에 이르기까지 작동되고 있는데 그것은 환경에 반응하는 한 도시인의 조그마한 정서를 캔버스라는 매체를 통해 담는데 있다. 마치 유트릴로가 파리의 담벽을 애정과 교감을 통해 희게 칠해가듯 그는 현대 도시의 담벽을 나름의 교감적 언어로 접근해 나가는 것이다.

 

 

#1991_02_LIVING TIME_181x227cm_mixed media_1991

LIVING TIME_181x227cm_mixed media_1991

 

 

너저분하고 지저분한 광고물들이 본래의 선명한 색채와 형태를 잃은 채 부질없는 이미지로 남겨져 있는 폐허로서의 벽을 자신이 모아왔던 인쇄물들(수화물 딱지와 같은 정겨움과 어떤 기억의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존재들)과 함께 일종의 꼴라쥬 기법으로 집합시켜 하나의 회화적 장면으로 치환시켜 놓는 것이 바로 그 방법론이다. 그것들은 하나의 평면(平面)에서 배경이나 주제의 역할과는 무관하게 서로 동시적이고 등가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그 이미지의 교환은 기능을 잃은 시각적 정보들의 또다른 오브제적 각성일 따름이다.

 

 

#1992_03_LIVING TIME_130x162cm_mixed media_1992

LIVING TIME_130x162cm_mixed media_1992

 

#1992_04_LIVING TIME_181x227cm_mixed media_1992

LIVING TIME_181x227cm_mixed media_1992

 

 

어쩌면 당뇨병에 걸려 혈기를 잃은 시각적 정보들의 또다른 하렘으로서 작용하는 것이 그의 벽이며 그들은 역설적으로 작가 자신의 드로잉과 액션을 통해 더 이상 부폐하지 않는 존재들로서 거기에 남겨진 채 시각적 리듬과 함께 유쾌한 음모를 꾸미게도 되는 새롭고 신선한 존재들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벽들에는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호기심과 정감이 가볍게 실려져 있으며 구석구석에는 마치 퀴즈프로의 긴장된 한 단편처럼 극사실적 기법의 형상들이 이 유쾌한 음모의 한편에 엄숙하게 자리잡고 있다. 하나의 역설이고 아이러니 이지만 작가가 회화(繪畵)를 대하는 솔직한 자세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1992_05_LIVING TIME_130x162cm_mixed media_1992

LIVING TIME_130x162cm_mixed media_1992

 

#1992_06_LIVING TIME_130x162cm_mixed media_1992

LIVING TIME_130x162cm_mixed media_1992

 

 

아마도 그는 회화(繪畵)를 어떤 공식과 양식의 결론으로서 대하기보다는 그 자신이 바라보는 근시안적 삶(?)의 한 표현으로서 존재시키길 원하는 것이라 볼 수 있고 그것은 그런만큼 현대 도시인들의 시각적 관념의 한 표상으로서 자리잡은 채 우리에게 발빠른 사색과 회상의 순간을 던져주며 때로는 익살스러운 꿈과 낭만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낡은 정보의 덧없는 교감이 그의 평면에서 이루어질 때 그의 회화(繪畵)는 짧은 생명을 누리며 현대인 특유의 시각적 메커니즘을 교환한 채 기억 밖으로 사라질 것이다.

 

 

#1992_07_TWO BOXES_mixed media_1992

TWO BOXES_mixed media_1992

 

#1991_03_UNTITLED_130x162cm_mixed media_1991

UNTITLED_130x162cm_mixed media_1991